크게 보기 김교만
한국 시각디자인의 선구자
농악·소나무·장승 같은 한국 고유의 민속적 소재를 절제된 선묘와 그래픽으로 풀어낸 디자이너이자 교육자.
01생애 및 교육적 발자취
1928년 충남 공주에서 태어난 김교만은 자연과 민속적 정서를 바탕으로 성장했습니다. 1956년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응용미술과를 졸업한 후, 은사 장발 학장의 권유로 권순형 교수와 함께 국내 최초의 디자인 스튜디오인 ‘K-K 디자인 사무실’을 설립하며 한국 디자인 산업의 초석을 놓았습니다.
이후 동양방직(주) 디자이너, 진명여고·서울예고 교사를 거쳐 1964년부터 1994년 정년퇴임 시까지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교수로 30년간 재직하며 후학 양성에 힘썼습니다. 50세의 나이에 영국 세인트마틴스 미술대학으로 유학을 떠날 만큼 높은 향학열을 보였으며, 노년에는 매킨토시와 멀티미디어 툴을 끊임없이 독학하여 작업에 적용하는 등 평생 도전을 멈추지 않는 교육자의 모범을 보였습니다.
02디자인 철학 및 작품 세계
김교만의 작품 세계는 ‘절제된 단순미’와 ‘다정스런 정감’으로 요약됩니다. 농악, 소나무, 장승 등 고향 공주의 풍토와 한국 고유의 민속적 소재를 현대적인 간결한 선묘와 그래픽으로 단순화하여 서정적 포스터와 일러스트레이션의 기틀을 다졌습니다.
일러스트레이션은 현대 산업사회가 탄생시킨 새로운 회화이자 한 나라의 문화를 반영하는 사명감을 가져야 한다.— 김교만의 핵심 디자인 철학
대표작 · 국가적 이벤트 디자인
- 1978제42회 세계사격선수권대회
- 1986아시안게임 문화포스터 및 국제공항 사인 시스템
- 1988서울올림픽 문화포스터
- 1992제노바 엑스포 대한민국관
- 1994‘한국방문의 해’ 심벌마크
대표작 · 공공 및 종교 디자인
- 1982서울지하철 3·4호선 토탈디자인
- —한국천주교 200주년 기념 심벌마크
- —천주교 반포성당 CI 및 성구 디자인
03주요 업적 및 역사적 의의
(사)한국시각디자인협회 초대회장, 서울일러스트레이터협의회 회장 등을 역임하며 디자인 권익 신장과 학문적 체계화에 기여했습니다.
주요 수훈 및 서훈
- 1993동탑산업훈장
- 1996‘한국의 산업디자이너 100인’ 최다 득표 선정
- 2020디자이너 명예의 전당 헌액
컴퓨터를 활용한 공간 그래픽 디자인을 준비하던 중, 1998년 7월 뉴욕 소호 갤러리 개인전(‘Rhythm of Korea’)을 20여 일 앞두고 70세를 일기로 작고했습니다. 해당 전시회는 그의 유작전이 되었으며, 한국인의 정체성을 현대 디자인으로 승화시킨 거장으로 영원히 기억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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